[기고]약자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희망의 정치’를 기대하며
바이오
작성자
이재명 국민주권정부에 바란다
– 약자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희망의 정치’를 기대하며
김성기
가천대학교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전) 아파도 걱정없는 세상 한국건선협회 회장
대한민국의 새로운 국민주권정부는 언제나 한 시대의 희망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희망의 정치는 화려한 구호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데서 출발합니다. 사회의 가장 약한 곳에서 들려오는 고통과 절박함을 외면하지 않을 때 비로소 정치의 존재 이유가 드러납니다.
저는 오랜 시간 환자단체 활동을 해온 사람으로서, 그리고 만성질환 환자들과 함께 삶의 무게를 나눠온 시민으로서 새롭게 출범한 이재명 국민주권정부가 ‘약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정치’를 실현해 주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작년 대한민국 의료현장은 그 어느 때보다 큰 혼란을 겪었습니다.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갈등과 의료 인력 문제는 단순한 정책 논쟁을 넘어 의료 공백이라는 현실적 위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충격은 늘 그렇듯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먼저 닿습니다.
병원을 찾지 못하는 환자, 치료가 지연되는 만성질환자, 의료비 부담으로 삶이 흔들리는 가족들. 이들의 고통은 통계나 숫자로 환산하기 어려운 삶의 문제입니다. 의료체계의 균열은 결국 환자의 삶에서 가장 먼저 드러납니다.
특히 자가면역질환 환자들의 현실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고통 속에 놓여 있습니다. 건선, 류마티스관절염, 크론병, 궤양성대장염, 강직성척추염, 중증 아토피 등 수많은 자가면역질환은 평생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입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질환이라는 이유로 환자들은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기도 하고, 고가의 치료제와 제한된 치료 선택지로 인해 큰 경제적 부담을 감당해야 합니다. 많은 환자들이 질병 자체보다 사회적 고립과 제도적 공백 속에서 더 큰 고통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건선협회를 이끌며, 그리고 한국자가면역질환연합회와 함께 환자들의 목소리를 사회와 정부에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정책 토론회를 열고, 제도 개선을 요구하며, 질환 인식 개선 캠페인을 이어온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병을 앓는 사람들이 사회에서 배제되지 않고, 존엄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새 정부가 추진해야 할 환자 정책의 출발점은 분명합니다.
첫째, 자가면역질환에 대한 국가 차원의 종합 정책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현재의 제도는 질환의 복합성과 만성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치료와 복지, 재활과 사회참여까지 포괄하는 통합적인 정책 체계가 필요합니다.
둘째, 치료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합니다. 많은 환자들이 고가의 생물학적 제제와 제한된 보험 기준 때문에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고 있습니다. 교차치료 허용 확대 등 치료 선택권을 넓히는 제도적 개선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셋째, 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이 필요합니다. 자가면역질환은 외형상 드러나지 않는 특성 때문에 여전히 많은 오해와 편견이 존재합니다. 환자들이 직장과 사회에서 차별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지속적인 교육과 공공 캠페인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넷째, 정확한 환자 데이터 구축이 필요합니다. 자가면역질환 등록제도 도입과 국가 차원의 실태조사를 통해 정책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를 마련해야 합니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정책은 정확한 데이터에서 시작됩니다.
다섯째, 환자 중심의 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의료비 지원만이 아닙니다. 심리 상담, 직업 재활, 사회 복귀 지원 등 삶 전체를 회복할 수 있는 다층적인 정책이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한 정책 결정 과정에 환자단체가 참여하는 구조를 마련하여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와 환자단체 간의 지속적인 소통입니다. 정책은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때 비로소 현실이 됩니다. 환자들의 경험과 고통, 그리고 작은 희망들이 정책에 담길 때 그것은 단순한 행정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정치가 됩니다.
이재명 국민주권정부가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정부라면, 가장 아픈 사람들의 목소리에서 국정의 방향을 찾을 것입니다. 환자는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미래를 만들어가는 국민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특별한 특혜가 아닙니다. 아파도 삶이 무너지지 않는 사회, 질병이 있어도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 고통의 목소리를 정책으로 바꾸는 정치, 그것이 바로 희망의 정치입니다. 새 정부가 환자의 절박함을 외면하지 않고 실천으로 응답할 때 대한민국의 의료와 복지는 한 단계 더 나아갈 것입니다.
아파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 환자도 당당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
그 희망의 길을 국민주권정부가 함께 열어주기를 기대합니다.

